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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s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에서의 딜레마

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동경한다. 시간이 날때 서점에 가서 죽치고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가장 의자가 많고 사람이 적은 대형 서점을 선호해서 그런 곳만 찾아다녔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는 사실 독서에 있어 커다란 2가지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로 읽은 책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 디테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노래를 들을때도 가사보다는 노래가 가진 감성과 그루브에 주로 귀를 기울이는 등 이미지를 주로 기억하는 나의 특성상 책의 줄거리 같은 디테일이 잘 기억이 안난다. 그래서 어렸을적 많이 읽은 책들이 기억이 안나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서 메모도 남기도 글도 쓰곤 하지만 그 글을 다시 읽을때면 아직도 정말 이 글 조차 내가 쓴 것일까 싶을 때가 종종 있다.

두번째로 책을 읽으면 내가 발견해야될 세상의 진리를 미리 스포일링 당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특히나 좋은 책들을 싸잡아 요약한 책 (이를테면 강신주의 감정수업, 이지성의 고전 문학 관련 책들 등등)을 싫어한다. 더 심각한 것은 정말 좋은 책들을 만나면 그냥 화두만 보고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싶어 책장을 덮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교 때 부터는 바빠지기도 했지만 양으로만 생각하면 책을 절대 많이 읽는 것은 아니게 되어 버렸다. 특히 이 두번째 딜레마는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아주 삶이 답답하고 팍팍할 때를 제외하고는 책을 멀리하는 좋은 핑계로 작용한다. 이런 생각은 사실 고쳐야할 나쁜 습관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책을 좋아하지만 안 읽는 다는 것은 내가 안 좋아하는 것인가 ? 게임은 내가 확실히 좋아했던 적이 있었는데 잠도 안 자면서 했었는데.' 이런 질문에 나는 스스로 대답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어쩌면 책을 안 읽으면 비지성인이라는 사회적 관념과 싸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지금은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라 많은 논문들을 매일매일 읽고 있으니 일반 문학들을 많이 못 읽을뿐 전공 지식은 근 10년간 열심히 습득하고 있는 중이니 두가지 핑계와 다름없는 딜레마 덕에 문학 상식(?)은 한참 부족할수도 있지만 나름 지성인이라고 디펜스는 할 수 있을 거 같다. 또 무언가 계기가 있다면 이 딜레마는 없어지기도 또 다른 것이 생기기도 하겠지. 여튼 분야가 무엇이든 독서를 통해 최고의 지성인들과 맞닿을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즐거운 일이다.